오늘의 TV> 응답하라 1988

 

나는 그들의 이 약삭빠름이 싫었다. 어느 하나 모자랄 것 없는 드라마의 이 완벽한 이음새가 싫었다. 쌍문동 이웃들의 여러 가지 고뇌와 갈등 상황은 끝에 가서 늘 파스텔 톤으로 치장되는데, 거기엔 현실에서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던 결코 무너지지 않는 어떤 종류의 <유토피아>가 깔려 있었다.

그 유토피아가 찝찝했다 


by 추암

 

2015년 12월 11일 오후 12:44

 

 

추암

<응팔이 못마땅한 이유>

1. <응답하라1988>을 뛰어난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못마땅히 여기는 이유가 있다. <응팔>에는 흥행의 요소들이 교과서적일 만큼 조금씩, 전부 들어가 있다. 적당한 개그, 적당한 신파, 적당한 향수,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얄미울 정도로 이 세 요소가 매회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매번 웃을 준비를 하고 보았다가 어느 순간 질질 짜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 번의 어김도 없었고, 매번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히 나의 웃음보와 눈물샘 그것들을 각각 1:1 비율로 섞어놓았다.

2. 여기에, 요즘 유행한다는 “츤데레남”을 등장시켜 나쁜 남자를 선호하는 우리네 여성들의 좌심방 우심실을 농락하고 있다(안 봐도 성덕선은 정환이의 여자가 될 것이다).

3. 구슬프면서 찢어지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인권이형의 <걱정말아요 그대>. 자, 이제 눈물 쏟을 시간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이 노래가 배경음으로 나온다. 그 가사를 그 목소리로 듣는데 안 울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걱정 말라는데, 이제 다시 노래하자는데, 그 어느 누가 울지 않고 배길쏘냐.

4. 목 놓아 울었다. 눈에서는 어김없이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집에 계신 엄마가 생각나 울었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 울었다. 드라마가 재현한 당시 시골 장례식장의 모습은 거의 99프로에 가까운 일치도를 보여주었다. 우리 할머니 장례식 때가 딱 그랬다. 나는 당시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점이었다. 할머니가 생각나서 한참을 울었고 나중에는 멍해졌다.

5. 멍한 상태로 시선은 계속 드라마의 영상을 따라갔는데, <응팔>은 나를 한순간도 침울하게 놔두질 않았다. 느닷없이 성덕선의 몸개그가 펼쳐졌던 것인데 나는 이미 웃고 있었다. 제작진들에게 조종되고 있다고 느낀 건 그때부터였다. 그건 분명 어떤 의미의 예속이었고 또 어떤 의미의 구속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감정이 어느 순간 움직이고 또 어떤 계기로 폭발하며 뜨거워지고 차가워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점점 자기들이 쳐놓은 그물 안으로 소리 없이 잡혀드는 그 “수확의 기쁨”을 먼발치에서 느긋한 눈으로 즐기는 듯 보였다.

6. 그들의 이 약삭빠름이 싫었다. 어느 하나 모자랄 것 없는 드라마의 이 완벽한 이음새가 싫었다. 쌍문동 이웃들의 여러 가지 고뇌와 갈등 상황들은 끝에 가서 늘 파스텔 톤으로 치장되는데, 거기엔 현실에서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던 결코 무너지지 않는 어떤 종류의 <유토피아>가 깔려 있었다.

7. 그 유토피아가 찝찝했다. 내가 걸고넘어질 딴지는 겨우 이것뿐이다. 찝찝하다는 것, 다들 너무 행복하게 잘들 살아간다는 것, 극본과 연기가 너무 잘 빠졌고 사람들이 온통 응팔 이야기만 한다는 것,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런 지극히 소소하고 주관적인 이유들로 인해 짜증이 났다.

Posted by 이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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